일본 실패의 30년, 헤이세이 시대의 첫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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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한국에서 이미지 좋은 아키히토 일왕.
1989년 1월 8일 ~ 2019년 4월 30일.
일본은 패망과 재기의 기간이였던 전범 히로히토의 시대 쇼와가 1989년을 1월 끝을 맞이하며 새로운 시대 헤이세이가 열림.
미국과의 플라자 합의 이후 엄청난 자본이 일본 안에 흘렀고 이 돈들은 주식과 부동산으로 들어가게됨(일본 버블 경제).
겉으로 모두가 잘 살게 된 것 처럼 보이던 시기였고 새로운 연호의 시대도 그러길 당시 일본 사람들은 바랐음.
(실제로 닛케이 지수 최대치도 89년 12월에 달성)
하지만 그런 바람과 별개로 다이나믹한 사건 사고들이 발생함.
1989년 7월, 도쿄/사이타마에서 소녀 4명을 잇따라 살해 후 성폭행한 혐의로 체포된 미야자키 츠토무.
1989년 일본의 출산율이 1.57명 밑으로 떨어지면서 본격적인 저출산 시대로 들어감.
(1.57 쇼크)
1993년 7월 40회 중의원 선거.
1955년 이후 처음으로 자민당은 단독 과반을 실패하면서 '55년 체제'가 붕괴됨.
(이 선거는 1988년 리쿠르트 사건이라는 정경유착 사건으로 커진 일본 사회내의 정치 개혁 바람이 실현된 결과)
1993년 구인배율( 구직자 대비 구인자 비율 )이 1.0 밑으로 떨어지면서 장기간 취업난이 시작됨.
1995년 1월.
일본 효고현 남부 지방(고베, 니시노미야 등)에 2차대전 이후 (당시) 가장 강한 지진이 발생.
사망자 6300여명, 피해액은 약 1970억 달러.
2011년전까지 일본에서 가장 피해액이 큰 지진이었음.
1995년 3월.
사이비종교인 옴진리교는 도쿄 지하철에 사린 가스를 살포하는 생화학테러를 저지름.
아직 고베를 초토화 시킨 대지진의 여파가 가기도 전이었고, 엘리트들이 사이비 종교에 빠져 테러를 저질렀기에 일본 사회에 많은 충격을 줌.
1997년 11월.
야마이치 증권(위)과 홋카이도 척식 은행(아래)의 파산.
일본 버블 붕괴의 하이라이트. 한국 IMF때 대우가 무너진 것과 비슷함.
야마이치 증권은 당시 일본 4대 증권사, 홋카이도 척식 은행은 20대 은행이었지만 결국 버블 붕괴를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게 됨.
야마이치 증권 파산에 대한 사장의 사죄 방송은 일본에서 버블 붕괴 하면 자주 나오는 장면이라고 함.
당시 사과를 하며 눈물을 흘렸던 노자와 쇼헤이 사장은 사실 흔한 일본의 샐러리맨이었지만 높으신 분들이 패전 처리 투수 써먹을려고 사장으로 임명했다는 이야기도 있음.
2019년 연호가 바뀌면서 헤이세이 30년을 돌아보는 책들이 일본에서 많이 발간되었고 한국에도 몇권 번역되었음.
대체로 "풍요로웠던 쇼와, 잃어버린 헤이세이" 같은 분위기인데 아마도 처음부터 위의 큰 사건사고들이 많이 터졌고 특히,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실패했다'라는 이미지를 만든게 아닌가 싶음.
다만 경제 실패와 관련된 부분은 우리 IMF처럼 버블이 붕괴되기 전부터 이미 썩어있던게 그때 터진것 뿐이다 라는 평가를 하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