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어원 찾기 15 - 네덜란드편
관련링크
본문
네덜란드 왕국 Koninkrijk der Nederlanden
네덜란드라는 국명은, 낮은Neder 땅Landen이라는 의미입니다.
경우에 따라 저지대라고 표현한 역사적 경우도 있습니다.
로타링기아 왕국의 영역.
로마 시대에는 게르만족 계통의 바타비아족이 살고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프랑크 왕국 시절에는 카롤루스 대제의 사망 이후
손자 로타리우스 1세에게 해당 영지가 넘어가면서
‘로타리우스Lothar의 땅’, 로타링기아Lothringia의 일부로 불리게 됩니다.
이 명칭은 이후 언어에 따라 로렌Lorraine, 로트링겐Lothringen 등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당시 네덜란드어는 저지 독일어의 사투리 정도로 가까웠다.
한편, 이때까지 해당 지역은 언어적으로도 게르만어를 공유해서,
본인들을 부르는 호칭으로 게르만어를 차용하고 있었습니다.
그 원형은 theudo로, 의미는 ‘사람들이 널리 쓰는, 대중적인’이라는 뜻입니다.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네덜란드어에서는 duutsc로,
저지 게르만어에서는 dütsch로,
고지 게르만어에서는 diutisc로
표현이 점차 분화하게 됩니다.
이후, 영국에서는 네덜란드 사람들이 자신들을 칭하는 duutsc라는 명칭을
영어식으로 차용해서 네덜란드인들을 dutch라고 부르게 됩니다.
그러나 정작, dutch라는 호칭이 영국에 퍼질 무렵,
네덜란드에서는 부르고뉴 공국, 오스트리아 공국 등의 지배를 받으면서
duutsc라는 표현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부르고뉴 공국의 일부가 된 네덜란드 지역.
15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저마다 각자의 언어로 네덜란드 지역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부르고뉴 공국 시절에는 les pays de par deçà(이 쪽 나라/땅),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의 치세에는 pays d'embas(아래쪽 나라/땅) 등으로
조금씩 표현이 바뀌는데,
pays d'embas(아래쪽 나라/땅)를 다시 네덜란드어로 번역한
‘저지대neder landen’라는 표현이 점차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16세기부터 ‘네덜란드’라는 고유 표현이
‘저지대’라는 지리적 표현과 분리되어서 고유명사처럼 사용됩니다.
이후 ‘저지대’라는 표현은 ‘베네룩스 3국’이 위치한 지역을 부르는 지리적 명칭으로,
네덜란드라는 표현은 ‘네덜란드 왕국’의 본토를 부르는 정치적 명칭으로 분화하게 됩니다.
독립을 쟁취한 북부 7개 주
한편, 네덜란드는 이후 합스부르크 가문의 분할 상속 과정에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Habsburg 가문에서 분리되어
스페인 압스부르고Habsburg 가문으로 상속됩니다.
이후 스페인의 자치권 침해 시도에 반발해서
북부의 7개 주
홀란트Holland
제일란트Zeeland
흐로닝언Groningen
프리슬란트Friesland
위트레흐트Utrecht
오버레이설Overijssel
헬데를란트Gelderland
등이 힘을 모아 독립을 시도합니다.
이때 오라녜 공작 빌럼 1세의 주도 하에 네덜란드가 독립에 성공했고,
빌럼 1세는 네덜란드 초대 총독stadtholder으로 추대됩니다.
빌럼 1세. 200여 년 뒤 네덜란드 왕국의 왕이 되는 빌럼 1세의 선조
그러나, 이 독립 전쟁 과정에서 네덜란드는 둘로 분리됩니다.
플란데런Vlaanderen을 포함한 남부 지방은
스페인 입장에서도 경제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주로 네덜란드 남부에서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졌습니다.
결국, 남부의 10개 주는 다시 스페인에게 복속되었으며,
북부의 7개 주만이 네덜란드 공화국으로 떨어져 나오게 됩니다.
네덜란드 공화국과 분리된 스페인령 네덜란드
이러한 과정에서, 저지대의 경제적 헤게모니가 남부에서 북부로 이동하게 되는데,
이 즈음부터 암스테르담을 중심으로 한 홀란트 지역의 경제가 점차 번성하기 시작합니다.
이후, 홀란트 지역이 네덜란드의 대표라는 이미지를 얻게 되는데,
단적인 예로, 네덜란드의 한자 명칭인 화란和蘭이 바로 홀란트에서 유래했습니다.
중국에서는 네덜란드를 허란荷兰으로,
일본에서는 네덜란드를 오란다オランダ로 부르며,
그 외 다수 국가에서 여전히 네덜란드를 홀란트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오라녜Oranje가 어디냐 하면, 프랑스 남부의 오랑주Orange이다. 아비뇽 근처에 위치.
한편, 네덜란드 독립 당시,
국제적인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왕을 추대하는 데에 실패하고,
네덜란드 공화국으로 발돋움하게 됩니다.
그러나 공화국이 된 이후에도
실질적으로는 오라녜 공작 빌럼 1세의 가문, 오라녜나사우 가문이 총독직을 세습합니다.
이후 약 2세기 동안, 오라녜나사우 가문은 실질적인 네덜란드 왕가였는데,
실제로 올리버 크롬웰 사후 영국에서 벌어진 명예혁명의 결과로
오라녜나사우 가문의 빌럼 3세가
네덜란드 총독과 영국 국왕을 겸임하기도 했습니다.
나폴레옹은 유럽 역사에서 빠지는 곳이 없다.
2세기 간의 평화로운 시기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은 바로, 프랑스의 나폴레옹 1세였습니다.
나폴레옹 1세는 네덜란드를 점령하고 괴뢰 정부였던 바타비아 공화국을 세웁니다.
그리고는 이내 바타비아 공화국을 홀란트 왕국으로 이름을 바꾼 뒤,
동생 루이 보나파르트를 왕으로 임명합니다.
괴뢰국 국왕이 국민의 지지를 받기란 참 힘든 법인데.....
루이 보나파르트는 여타 친인척 낙하산들과는 달리, 네덜란드를 유능하게 잘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 1세는 프랑스를 위한 통치를 했고,
루이는 네덜란드를 위한 통치를 하려고 하다보니,
여러모로 충돌이 불가피했습니다.
결국 1810년 나폴레옹 1세는 루이 보나파르트를 추방하고
홀란트 왕국을 프랑스 제국에 합병했습니다.
빈에서 열린 열강들만의 회의. 네덜란드는 그래도 줄을 잘 탄 편이다.
이후 나폴레옹 전쟁의 결과가 나폴레옹 1세의 패퇴로 끝나자,
그 전후 처리를 위해 빈 회의가 개회됩니다.
회의의 결과, 1815년 3월 16일 네덜란드는 기존의 영토에
오랫동안 남남이었던 남부 네덜란드를 더해 독립을 거머쥡니다.
네덜란드는 공화국 시절에도 사실상 왕정이었기에,
국민들의 신임을 받던 오라녜나사우 가문의 빌럼 프레데리크를
새로운 국왕으로 추대해서
네덜란드 왕국으로 새롭게 출범하여 지금에 이릅니다.
P. S. 그러나 남부 네덜란드 지역은
네덜란드 왕국이 독립한 지 15년만에
종교, 문화 등의 문제로 1830년 벨기에 왕국으로 분리 독립하게 됩니다.
P. S. 2. 네덜란드의 수도는 암스테르담이지만,
왕궁과 정부 기관 대부분은 덴 하흐Den Haag에 위치해 있습니다.
축구 팬들에게는 앨런 파듀 갓동감독이 이끌고 있는 ADO 덴 하흐로 알려져 있으며,
역사인들에게는 이준, 이상설, 이위종 열사가 파견된 헤이그로 알려져 있습니다.
-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대립되는 학설이 있으면 댓글로 남겨주세요.